오늘 지하철을 타다 집어든 석간 타블로이드의 1면 머릿기사로 서울시의회의 조례개정안 논란이 등장했다. 사설학원의 교습시간은 22시까지로 제한한 규정을 삭제한다는 것인데, 이 개정이 엄청난 논란을 불러오는 모양이다.
불필요한 경제규제를 철폐하지 않으면 규제 50건당 공무원 1%를 감축하겠다는 폭탄 선언을 하셨던 시장경제의 총아이자 보이지 않는 손의 숭배자이신 이명박 대통령마저도 태도를 바꾸는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한 일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다. 한국에서 교육은 이미 단군을 쌈싸먹은 국민신앙이다.
재미있는 것은, 찬성 의견은 전혀 언급되지 않고, 반대 의견만 매스컴과 인터넷을 뒤덮는다는 것이다. 나는 이 신문을 보면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실망했었다. 자기 입으로 규제를 철폐하고, 시장경제논리를 따른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 반대에 굴하지 않고 버스, 청계천, 대운하는 주장하던 사람이 왜 갑자기 생각을 바꾼 건지 모르겠다.
1. 같은 말이지만, 참 누가 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극명하게 달라지는구나.
과로해서 성인들이 일을 하다 죽었다는 말은 있어도,
학생들이 공부하다 피곤해서 죽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
VS
세상은 할 수 있다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을 했는가를 원한다.
아무리 죽어라고 공부해도 결코 죽지는 않는다.
전자는 오마이뉴스에서 목청껏 화살을 날려대는 정연희 교육문화위원장의 발언이다. 다들 이 말을 듣고 입에 거품을 물었지만 내 눈에는 정 위원장의 얼굴에 어떤 유명 인사의 얼굴이 오버랩되어 보였다.
그 사람은 서울대 법과 대학 재학중에 사법시험을 최연소로, 행정고등고시 수석, 외무고등고시를 차석으로 모두 합격한 것으로 유명하며, 서울대 법대를 수석졸업했다. 이후 미국 예일 로스쿨과 하버드 로스쿨에서 LL.M.을 마쳤고, 컬럼비아 로스쿨에서 JD과정을 졸업했다. 미국 4개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세계 최대의 로펌인 베이커 & 맥켄지에서 2년간 변호사로 활동했다. 귀국 후 수원지방법원 판사를 거쳐 이후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이 사람은 천재로 유명한 고승덕 변호사다. 이 사람은 전국 대학을 돌며 공부에 대해 강연을 하는데, 그 강연들에서 빠지지 않는 말이 위에 쓴 말이다. 자신은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서 특제 비빔밥을 개발해 먹었고, 24시간을 공부와 잠으로 양분하는 바람에 위장이 나빠졌지만 설마 죽기야 하겠나는 오기로 공부했다고 자랑스럽게 강연한다. 이 사람을 출세와 명예에 미쳐서 돌아버린 싸이코로 치부하는 것까진 그렇다 쳐도, 그럼 이 사람의 강연을 듣고 감동했던(나 역시 깊이 깨달은 바 있었다) 그 많은 88만원 세대들까지도 다 심장이 얼어붙은 기곗덩어리로 몰아세울 작정이신가?
좀 이야기가 샜는데, 공부해도 죽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는 전혀 그릇된 말이 아니다. 학생에게 공부하라는 말이 마음에 안 드는가? 그럼 소방관들도 밤낮 없이 계속되는 격무에 지쳐 좋아하는 스포츠를 못 즐기시니 22시 이후에는 소방서를 닫아버리자. 이게 국민의 뜻이라면.
2. 22시 이후에 학원을 다녀서 잠을 못 잔다고? 그럼 자라. 대신 앞으로도 무조건 자라.
기가 막혀서. 학원 규제의 개정이 학생들의 수면권을 침해한단다. 학원이 왜 생겨났는지에 대한 기본적 판단능력마저 결여된 사람들이 꽤 되는 모양이다. 정부에서 강제로 학원을 설치한 줄 아나? 학원을 다녀서 잠을 못 잔다면 학원 안 가면 된다. 낮에 알아서 자습하고 밤에 잠을 자면 되지 않나? 이렇게 하면 돈도 굳는다. 자식을 초등학교에 안 보내면 처벌되지만, 학원 안 보낸다고 누가 뭐라고 하나? 학원은 철저히 수강자 자신이 원해서 자기 돈 내고 다니는 곳이다. 그런데 자기 좋아서 학원은 가 놓고 잠 탓이라, 참 피콜로 더듬이 같은 소리 하신다.
이들의 말대로 학생의 건강권을 국시로 삼고 정부 규제로써 철저히 보호하려고 한다면 학원만 잡으면 안 된다.
모든 학생들은 22시 이후에는 학원, 학교, 독서실은 물론이고, 집에서도 절대 공부를 해서는 안 된다는 법을 만들어라. 왜냐면 이 시간 이후의 공부는 학생들의 건강을 해치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존립마저 위협할 테니까.
당연히 모든 학생들은 22시 이후에는 TV는 물론이고 컴퓨터 따위를 해서는 안 된다. 잠을 자지 않고 TV를 볼 수도 있지 않냐고? 물론 안되지. 학생들은 대한민국의 미래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22시 이후에 잠은 자지 않고 티비나 컴퓨터에 기력을 낭비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건강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에 손상을 입히는 행위이다. 이건 마치 군대에서 군인의 신체를 국가의 것으로 취급하는 쌍팔년도 논리와 유사하지만, 어쩐 일인지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는 국가권력이 이런 작태를 알아서 보여주기를 바라는 이들이 많다.
내가 공부를 하든 TV를 보든 어쩌든 내 인생 내 맘대로 한다는데 당신이 뭔 상관이냐고 묻고 싶겠지? 나는 오히려 그러는 너야말로 학원이 22시 이후에 열리든 말든 대체 뭔 상관이냐고 묻고 싶다.
3. 권리는 남이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손으로 얻는 것이다.
일본열도에 핵폭탄이 연이어 내려앉고, 일왕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며 세계에 무릎을 꿇었던 제2차세계대전 종전 당시, 일본의 속국이었던 우리 나라의 뜻 있는 이들이 기뻐하기보다는 앞일을 걱정하며 안타까워했던 이유를 모두 알고 계시리라. 거저 주어진 자유와 독립 운동을 통해 얻어진 자유는 비유하자면 연필심과 다이아몬드 수준의 차이를 갖는다.
학생들의 건강권을 위해 정부가 사설학원의 운영시간을 제한해야 한다고? 건강권은 말 그래도 권리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어떤 일을 행하거나 타인에 대하여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힘이나 자격'을 뜻한다. 당연히 권리의 요구는 학생들 본인이 직접 해야 한다. 권리를 요구할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
당신들은 지금 자기 자식들이 자신의 밥그릇도 챙겨먹지 못하고 남이 떠먹여주길 바라는 약자로 전락하길 바라는 것이다. 자식이 낚시를 하기 전에 알아서 물고기를 낚시통에 넣어 주는 셈이다. 부모가 자식의 알림장을 확인하고 필통에 연필은 잘 깎아 넣었는지 챙겨주는 것은 초등학교 때나 있을 법한 일이다. 자기 자식의 명예퇴직 신청서까지도 첨삭해 줄 심산인가. 대체 이런 나라의 이런 블로고스피어에서 투표권 대상 연령을 낮추자고 떠들어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다른 각도에서 보자. 모든 학생들과 모든 학부모들이 다 22시 이후의 사설학원 교습에 반대하는가? 아니다. 찬성하는 이들도 분명히 있다. 그런데 왜 그들이 자기 돈 내고 자기 사간 들여서 자기가 원하는 학원 수강을 하겠다는데 아무 상관도 없는 전교조 따위가 나서서 반대하는 걸까? 불특정 다수의 권리를 대변하면서 중첩되지도 않는 특정 부류의 권리를 막아버리는 것은 나치들이나 하는 짓이다. 휴전선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삐딱한 나는 이런 생각마저 든다.
'당신들, 자식들에게 진짜 사교육은 못 시키지? 그래서 남들이 사교육을 하면 내 자식이 상대적으로 밀려날까봐 걱정스러워서 사교육 제대로 하는 애들이 학원 다니는 걸 막아보려는 수작이지?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면 모르겠는데, 남의 감을 으깨버리려는 심보로 참 자식 잘 기르시겠다.'
4.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에게 자유롭게 사업을 할 권한을 허하라.
학생들의 건강을 지키겠다는 추상적인 개념을 수호하기 위해 제도적 차원의 간섭을 강제하는 것은 자기 잠을 줄이면서까지 자발적으로 학원을 다니고 싶어하는 이들의 권리를 빼앗는 것 뿐만 아니라 사설학원 운영자의 권리도 침해하는 것이다. 학교의 존재 목적과도 상당 부분 유사한, 학생을 위해서도 필요한 존재의 자유로운 영업 행위를 제약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할 일이 아니다. 이들은 공부를 하겠다는 학생이 미래에 성공하기 위해 도움을 주는 사설학원이라는 존재를 노래방 수준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오락실은 차라리 부모나 담임교사가 동반하면 갈 수라도 있는데, 학원은 무조건 22시 이후에는 가면 안 된다. 학원이랑 피씨방을 동급으로 보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던가. 똥으로 된장국 끓여먹었다는 얘기는 들은 적 없는데. 너무 흔한 일이어서 얘기도 안 나오는 건가 보다.
지하실에서 교습을 하는 것이 건강권 침해라고? 그럼 지하실 학원 안 가면 된다. 안 가면 알아서 망한다. 그런데도 안 망한다면 그만큼 효율적인 학원이라는 것이고, 결국에는 그렇게 떠들어대는 당신도 어떻게든 다니고 싶어하겠지.
5. 공부하기 싫은 거 안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 그 대신 니 인생은 니가 책임져라.
밤늦게 학원 안 가도 된다고 쾌재를 부르는 후배님들, 정신줄 좀 잡아라. 20대 형 오빠 누나 언니들에게 여쭤 보라고.
세상이 어떤가, 공부를 왜 해야 되는가, 왜 넌 아르바이트까지 해가면서 토익학원을 쳐다니냐고.
기름종이에 공부하기 싫다고 일기라도 썼다가 10년 뒤에 백수백조 된 다음에 펼쳐보든지. 아마 니 술병에 눈물이 절반일게다.
국가의 강제적 제도를 통해서 너희들의 건강을 지키고 싶어? 그럼 전장군님의 아이디어를 좀 빌리면 돼. 학과목에 유격훈련을 영어과목의 비율만큼 추가시키고 대입에 체력장을 수능과 동률로 반영하는 것 정도면 충분할 거야.
혹시 22시 이후에 자꾸 집이나 학원에서 갈궈대서 잠을 못 자겠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좋은 제도도 있어. 시내 요소에 사복경찰과 헌병을 풀어서 주민등록증을 검사하는 거다. 만일 성인임이 확인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 거지. 적발내역은 수형인명부가 아닌 생활기록부에 등재하여 대학 입시에서 철저히 불이익을 받는 거야.
부모님들이 강제로 학원을 보내서 가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간다고? 학원 안 간다고 개기면 집안 분위기가 싸해져? 그럼 너희 부모님은 인권을 유린하고 자유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교육을 하는 악질이야. 미국에서는 자식 교육 목적이더라도 사랑의 매를 들면 처벌한다더라. 제도가 너희들의 자유를 뒷받침해주길 원한다면, 악질 부모를 신고하는 전담기구를 창설해서 적발되면 친권을 박탈하게끔 하도록 학생운동을 주도해봐라. 장담한다. 앞으로 평생 학원 안 가도 될거다. 아니 20세 이후엔 못 가는 것이겠지만. 그래놓고 취직도 안 되는데 공무원이나 하자고 노량진에 껄쩍대기만 해 봐라.
(아, 농담인 건 다들 아시겠지.)
내가 정말 두려워하는 점은, 이런 이야기들이 권력자들의 입이 아닌 국민들의 입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요새는 신문을 읽으면 읽을수록,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가면 갈수록 파시즘이 살아나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다들 정말 역성혁명이라도 일으키실 참이신가? 지금 자신이 주장하는 논리가 자기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면 어떤 참극이 일어날지 , 대체 하루 앞도 내다볼 줄 모르는 건가?
그래서 아직도 대통령 당선자가 사형수 대머리 똥별에게 덕담을 구하는 거다.
미친 세상의 미친 사람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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